악동이라 불리우던 축구천재가 많은 우여곡절을 뒤로 하고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의 신화를 창조했던 멤버의 막내였던 그가 은퇴를 거론한다니 세월의 무심함을 실감할 수 있었고 더 없이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최고의 명장이었던 거스 히딩크가 인정한 재능이었지만 화려한 축구인생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더 많이 가슴에 남는다.
K리그에서 그의 플레이는 확실히 클래스가 달랐다. 그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는 수비수는 없었고 예상치 못한 슛을 날리며 득점을 올리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고 그가 뛰기에 지금의 무대는 너무 작다는 생각을 했다. 언론에서는 이런 그의 자만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고 몇마디 활자로 그의 재능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천재가 가지고 있는 악동기질을 두고 보기 싫은 매스미디어와 관계자들, 상황을 재대로 파악하지 못한 대중에 의해 공공의 적으로 바뀌게 되었고 대응에 대해 서툴러 당황한 이천수를 향해 더 많은 질타를 쏟아 부었다. 재능보다 사적인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것이 한국의 대중이고 스텝이니 그의 행보가 순탄하지 못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첫 번째가 이래서 어려운 것인가? 이천수는 현지 적응에 실패했고 국내 복귀와 해외 이적을 왔다갔다하면서 축협과 구단의 마찰에 휩싸였고 재능을 펼치기도 전에 전성기를 지난 나이가 되어 최고라는 타이틀은 무적으로 바뀌어 관계자들과 대중들은 그의 복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하였다.
맨유의 웨인 루니나 로빈 반 페르시. 더 오랜세월 전에 로베르토 만치니조차도 악동소리를 들었고 그라운드와 밖에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지만 그로 인해 축구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으며 재능을 펼치는 데 걸림돌이 되지도 않았다. 스포츠선수를 꿈꾸고 있는 유망주들이 재능을 키우는 데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는 확실히 아닌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코치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밤늦은 시간까지 술접대를 해야 하는 선수들 부모의 고충을 건내 듣는 순간 아직도 우리는 미개한 시스템에서 벗아니지 못하는 스포츠 후진국임을 알 수 있었다. 특별함을 가진 재능들을 평범의 사고로 바라보기엔 당연히 무리가 있음을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이천수와 같은 재능들이 재능을 재대로 펼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